Economy 21 192호
(초고)
현대․기아차의 슬로바키아 투자 결정
- 산업공동화(空洞化; hollowing out) 논의와 관련하여 -
현대․기아차는 지난 3월 2일 슬로바키아에 7억 유로(약 1조
220억원)를 투자해 공장을 설립하기로 결정했다. 기존의 미국, 중국, 인도,
터키 공장에 이어 유럽에 생산공장을 둠으로써 세계적 생산체제를 갖추게
되었다.
이를 두고 국내 언론에 제시된 기사들은 크게 두 가지 방향으로 분류할 수
있다. 하나는 기업의 경영전략이라는 관점에서 유럽연합(EU)의 형성에 따른
대응 전략으로 유럽 현지 생산의 필요성을 보도한 기사들이다. 5월에
슬로바키아는 폴란드, 헝가리, 체크 등을 포함한 중부 및 동부 유럽의
9개국과 함께 유럽연합(EU)에 가입하기로 되어 있기 때문에 슬로바키아 공장은
유럽 현지 생산업체로서의 이득을 누릴 것이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 기분좋은
일이다.
또 다른 하나의 보도 방향은 슬로바키아와 폴란드 사이의 투자 유치경쟁을
중심으로 삼은 것이다. 전자보다 흥미진진하기 때문에 언론에서도 지면상
비중을 더 둔 것 같고 인터넷에 붙은 독자의 댓글도 더 많이 붙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모든 기사가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이들 기사 가운데는
폴란드의 유치 실패를 언급하면서, 한국의 투자여건을 대비하는 방식의 기사도
많았다. 마치 한국의 열악한 경영 여건이 현대․기아차를 밖으로 내몬
듯이 해석될 수도 있는 것이다. 앞에서와는 달리 기분이 좋지 않고 우리
경제의 앞날에 대해 불안해 진다. 그러나 폴란드의 임금이 슬로바키아보다
높고, 세금도 높으며, 노동조합이 강했기 때문에 투자 유치에 실패했다는
인용이나 논평들은 보충 설명이 없이 제기될 경우 오해를 일으키기 쉽다. 예를
들어 다른 관점에서 보면 경제 개방이후 폴란드가 슬로바키아에 비해 노동자의
고용 안정이나 최저 생활수준과 노동 조건의 확보 측면에서 상대적으로
우수했으며, 국민경제에 필요한 산업의 선별 능력도 슬로바키아에 비해 뛰어난
것으로 평가하는 연구나 보고서도 제시되어 있다는 점이 무시되었다.
지난 몇 년간 산업공동화 현상에 대한 국내 언론의 지배적인 보도 경향에는
주의를 기우려야 할 부분이 있다. 산업공동화는 경쟁력을 상실한 기업이나
산업이 소멸하거나 해외로 이전함으로 인해 국내 산업구조에 빈 부분이
생겨나고, 이를 대신할 만한 대체 산업이 생겨나지 못하는 현상을 지칭한다.
같은 현상을 탈산업화(Deindustrialization)라고 부를 때는 제조업 위주의
산업화가 한 단계 마무리되면서 서비스업의 비중이 높아지는 등 경제발전에
따라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을 가리키지만, 굳이 산업공동화라고 부를 때는
부정적인 의미가 강하다. 산업공동화 관련 보도에는 고비용 구조가 기업을
밖으로 몰아내고 이 때문에 일자리 문제가 생긴다는 해석이 따라 붙게 되며,
고비용 구조의 해소 특히 임금억제와 강한 노조의 변화를 촉구하는 것으로
마무리되는 경향이 있다. 여기서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은 임금 억제를 통한
비용절감이 과연 일자리 문제에 대한 해법이 될 수 있는가이다. 작년에 한국의
임금 수준이 중국(한국 기업의 진출 지역 기준)의 10배에 달한다는 경제단체의
보고가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중국이나 인도, 인도네시아 등지와 임금 비용
측면에서 직접 경쟁이 가능한 수준으로 한국의 임금을 낮추려면 생산성 등을
고려해 대충 현재 임금의 1/3 수준이 될 텐데, 이렇게 되면 기업의 경쟁력이
회복될 것인가? 불행하게도 아니다. 국민 총생산의 2/3를 차지하는 소비
시장이 붕괴할 것이고, 물건을 팔 수 없게된 기업의 대량 도산과 자본의 대량
해외 탈출이 예상될 뿐이다. 한, 중, 일의 임금 수준은 대체로 1인당 GNP의
차이에 비례하고 있다. 따라서 산업공동화와 관련된 해법은 1인당 10,000불에
맞는 산업 구조를 갖추는 방향으로 기업의 경영전략과 정부의 경제정책이
개발되고 짜여지는 데서 찾는 이외의 길은 없다. 1인당 1,000불의 지역과 직접
비용 경쟁을 하는 것은 결코 실현될 수 없으며, 실현된다고 해도 한국경제의
붕괴를 가져올 뿐이다. 혹 다른 의도가 있다면야 할 수 없는 일이지만.
